신민호 관세사_서울지방관세사회 회장
트럼프 1.0의 유산: '안보'로 포장된 보호무역의 파고와 한미FTA의 이면
도널드 트럼프의 귀환은 단순한 권력 교체가 아니며, 이는 미국 무역 정책 기조의 완전한 전환이자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의 복귀를 의미한다.
2025년 1월 다시 백악관의 문을 연 그는 1기 행정부 시절부터 고수해온 보호무역의 칼날을 더욱 날카롭게 갈고 있다. 그가 1기 때 추진했던 고율 관세, FTA 재협상 압박, 그리고 중국과의 통상 갈등은 이제 하나의 강력한 체제로 되살아나 세계 무역 질서를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다. 우리가 마주한 트럼프 2.0 시대를 제대로 준비하기 위해서는, 먼저 한국 수출 산업과 통상 정책에 중대한 시험대가 되었던 트럼프 1기 행정부의 조치들을 냉철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안보'라는 방패 뒤에 숨겨진 관세의 무기화
트럼프 행정부 1기는 미국 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전례 없는 대규모 보호무역 조치를 단행한 시기였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구호 아래, 그는 자국 제조업 부활을 위해 수입품에 고율 관세를 매기는 방식을 택했다. 그 첫 번째 사례가 2018년 1월, 무역법 201조(Safeguard)를 근거로 한국산 세탁기와 태양광 셀·모듈에 대해 단행한 전격적인 세이프가드 조치였다. 이는 특정 수입품의 급증으로 인한 자국 산업 피해를 막겠다는 논리였으나, 사실상 미국산 제품을 보호하기 위한 긴급 수입제한 권한의 남용이었다.
더욱 충격적인 조치는 무역확장법 232조(Section 232)를 활용한 철강 및 알루미늄 관세 부과였다. 2018년 3월, 트럼프는 외국산 철강과 알루미늄이 미국의 군수 산업과 기반 제조업에 심각한 위협을 초래한다는 상무부의 결론을 근거로 철강에 25%, 알루미늄에 10%의 관세를 부과했다. 안보 동맹국인 한국조차 예외가 아니었으며, 우리 정부는 협상을 통해 관세 면제를 끌어내는 대신 '수입할당량(쿼터)'이라는 또 다른 형태의 수출 제한을 받아들여야 했다. 이 조치로 미국 내 철강 가격은 수개월 만에 40% 가까이 치솟아 미국 자동차 제조사들에게 부담을 주었으며, 한국 기업들은 동남아나 유럽 등으로 수출선을 돌리거나 현지 생산 설비를 확장하는 등 글로벌 전략을 전면 수정해야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안보를 명분으로 경제적 압력을 행사하는 위험한 선례가 이때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미·중 무역 전쟁과 글로벌 공급망의 긴장
트럼프 1기 무역 정책의 정점은 무역법 301조(Section 301)를 활용한 대중국 보복 관세였다. 이는 단순한 관세를 넘어 미국의 경제 안보와 기술 패권을 둘러싼 근본적인 전략 전환이자 전면적인 무역 전쟁의 시작이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중국이 미국 기업에 기술 이전을 강요하고 지식재산권을 침해한다는 혐의를 조사했고, 그 결과에 따라 총 4단계에 걸쳐 수천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고율 관세를 투하했다.
1단계로는 2018년 7월 첨단 제조 분야에 25% 관세를 매겼고, 2단계에서는 반도체와 화학 제품 등 기술 집약적 품목을 정조준했다. 이어 3단계와 4단계에서는 일반 소비재와 가전, 심지어 스마트폰까지 대상을 확대하며 중국을 압박했다. 이러한 조치는 한국 기업들에게도 직접적인 타격을 입혔으며, LG전자와 삼성전자가 중국 생산 라인을 베트남이나 멕시코로 이전하고 반도체 장비 업체들이 수출 승인 제약으로 납기 차질을 겪는 등 공급망의 대이동을 촉발했다.
자동차, 협상의 지렛대가 된 안보 논리
2019년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 일본, 독일 등에서 수입되는 자동차에도 무역확장법 232조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며 글로벌 자동차 업계를 공포에 빠뜨렸다. 트럼프는 한국차가 미국 시장을 점령하고 있다는 발언을 서슴지 않으며 이를 강력한 압박 수단으로 활용했다. 비록 실제 관세 부과로 이어지지는 않았으나, 이는 자동차 산업이 국가 안보와 제조업 부흥의 핵심이라는 프레임을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은 2018년 한미 FTA 개정 협상에서 미국산 자동차의 한국 인증 기준을 완화해주는 양보를 제공하며 일시적으로 이 위기를 유예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잠정적인 조치였을 뿐이며, 트럼프 2기 재집권과 함께 자동차 관세 카드는 언제든 다시 튀어나올 수 있는 시한폭탄이 되었다. 이는 FTA 체결국이라는 사실만으로는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로부터 완전히 안전할 수 없음을 보여준 뼈아픈 사례였다.
'끔찍한 협상'이라 비난받은 한미 FTA의 개정
도널드 트럼프는 대선 후보 시절부터 한미 FTA를 "끔찍한 협상(a horrible deal)"이라고 비판하며 미국의 무역적자 원인으로 지목해왔다. 그는 특히 자동차 산업과 철강 수입이 미국 제조업의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고 주장하며 2017년부터 본격적인 재협상을 압박했다. 협상 과정에서 미국은 화물자동차(픽업트럭)에 대한 25% 고율 관세 철폐 시점을 2021년에서 2041년까지 20년이나 연장하도록 만들었고, 미국차가 한국 시장에 더 쉽게 들어오도록 안전 및 배출 기준을 완화할 것을 요구했다.
한국은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제도(ISDS) 개선과 무역구제 조사 절차의 투명성 확보를 통해 방어에 나섰으나, 결과적으로는 철강 쿼터 수용 등 미국의 요구가 대폭 수용된 구조로 협상이 마무리되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한국산 픽업트럭의 미국 내 판매 실적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관세 유예를 받아들인 것이 실익 없는 양보였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결국 한미 FTA 개정은 미국이 원하는 '이익의 재균형'을 위해 동맹국의 희생을 강요한 대표적인 사례로 남았다.
기만적인 자유무역의 종언과 새로운 생존법
트럼프 1기 행정부의 관세 정책과 한미 FTA 개정 과정은 미국이 더 이상 자유무역의 '공정한 심판자'가 아님을 전 세계에 알린 사건이었다. 미국은 스스로 설계한 WTO 규범과 다자무역 질서를 무시하고, 자국의 이익을 위해 룰을 바꾸는 가장 노련한 선수가 되었다. 관세는 이제 단순한 세금이 아니라 상대국의 산업 정책 전반을 통제하고 경제적 양보를 이끌어내는 '전략 무기'로 진화했다.
이제 트럼프 2.0 시대가 열리며 한국의 수출 산업은 1기 때보다 훨씬 더 과감하고 공격적인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10%의 보편 관세, 중국산에 대한 60% 고율 관세, 그리고 FTA의 전면 무력화 위협은 이제 구호가 아닌 눈앞의 현실이다. 우리는 1기 시절의 경험을 통해 FTA 체결 사실 자체가 완벽한 방패막이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배웠다. 이제 단순히 물건을 싸고 좋게 만드는 기술력만으로는 부족하다. 미국의 관세 시스템을 철저히 분석하고, 제품 설계 단계부터 원산지와 품목분류를 고려한 정교한 공급망 설계가 필요하다. 트럼프가 던진 '경제 안보 중심주의'라는 화두 앞에서 우리는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치밀하고 유연한 국가적 생존 로드맵을 다시 짜야 할 시간이다.
2026년 4월 Pro 캐스팅 강의트럼프 2.0과 2026 관세 전쟁제30·31대 서울지방관세사회 회장 신민호 관세사
요약 및 정리: Google NotebookLM(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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