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30
Share
Copy Link
강남대학교 석좌교수 & 재정경제부 세제발전심의위원장
이전오 교수는 강남대학교 석좌교수이며 재정경제부 세제발전심의위원장을 역임한 조세법 전문가이다. 상속·증여세법과 조세법률주의 분야에서 활발한 연구를 이어오며, 주요 판례와 세제 정책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을 통해 조세법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들어가는 말: 조세정책의 두 축, 공평과 효율
조세정책의 두 축은 ‘공평(Equity)’과 ‘효율(Efficiency)’이다. 조세의 공평이란 같은 능력을 가진 자는 같은 세금을 내고(수평적 공평), 더 큰 능력을 가진 자는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해야 한다는 이념이다(수직적 공평). 반면 조세의 효율은 세금이 민간 경제주체의 의사결정을 왜곡하지 말아야 하고, 경제적 자원 배분의 효율성을 저해하지 않아야 하며, 조세 징수 및 납세 이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행정적ㆍ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원칙을 말한다.
공평과 효율은 때로 충돌하지만, 좋은 세제는 두 이념이 적절한 균형과 조화를 이룰 때 달성된다. 공평을 지나치게 추구하면 경제적 유인이 크게 약화되어 자본 유출, 투자 위축, 근로의욕 상실, 부동산 거래 절벽 등의 부작용을 초래하기 쉽고, 반대로 효율을 너무 추구하면 사회적 양극화와 불평등이 심화되고 세 부담의 역진성으로 인한 조세저항으로 말미암아 공동체의 신뢰 기반이 무너지게 된다. 따라서 조세제도를 설계할 때에는 각 세목의 특성과 경제적 여건을 고려하여 두 이념 간의 조화를 끊임없이 고민하여야 한다.
그런데 최근 우리 조세정책의 균형추가 ‘공평’이라는 명분 쪽으로 지나치게 기울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정치적 동기와 포퓰리즘적 여론, 그리고 과세 편의주의가 결합하면서 조세의 또 다른 축인 ‘효율성’과 함께, 납세자가 법에 따라 행동한 결과를 믿고 기대할 수 있게 하는 ‘법적 안정성’(예측가능성)이 훼손되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이 글에서는 공평에 지나치게 기울어 효율성과 합리성, 법적 안정성을 훼손하고 있는 우리 조세제도 세 가지를 짚어보고, 올바른 방향을 생각해 본다.
보유세: 비례세 원칙 상실
부동산 보유세(재산세 및 종합부동산세)는 조세 이론상 전형적인 ‘대물세(對物稅)’에 해당한다. 대물세는 담세자의 인적 사정이나 소득 또는 총재산 상태를 고려하기보다는 과세물건 자체의 가치에 착안하여 과세하는 세목이다. 실제로 주요 선진국의 부동산 보유세는 대체로 일정한 세율을 적용하는 비례세 형태로 운영되거나, 지방정부(지방자치단체)의 재정 수요에 맞춰 낮은 수준의 단일 세율로 부과된다.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유동성(현금)을 직접 창출하는 행위가 아니다. 소득이 발생하는 시점은 부동산 처분 시(양도소득세)나 임대 시(임대소득세)이다. 따라서 미실현 이익 상태인 보유 단계에서는 최소한의 담세력을 고려하여 낮고 단일한 세율로 과세하는 것이 자원 배분의 효율성을 해치지 않는 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재산세와 종부세로 나뉜 이원 체계도 이례적이지만, 특히 종부세는 보유세의 본질에서 벗어나 주요국에서 보기 드문 과도한 누진세율 체계를 두고 있다. 지난 8월 정부가 발표한 2026년 세제개편안은 거주 1주택자의 기본공제를 12억 원에서 14억 원으로 높이는 한편, 내년에는 1ㆍ2주택자의 최고세율을 2.7%에서 3.5%로 올리고, 2028년부터는 주택 수와 무관하게 0.5~5.0%의 세율을 적용하며, 공정시장가액비율도 현행 60%에서 최대 80%까지 높인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실거주 1주택자를 배려한 측면이 있지만, 고가 주택에 대한 누진 구조를 더욱 가파르게 한다는 점에서 보유세를 비례세로 운영하는 원칙과는 오히려 멀어지고 있다.
이는 보유세를 마치 ‘소득세’나 ‘부유세’처럼 취급하는 방식이다. 물론 보유세를 자산 불평등을 완화하는 수단으로 보는 시각도 있고, 납부유예 제도가 현금 흐름 문제를 일부 덜어 주기도 한다. 그러나 납부유예는 일부 납세자에게만 적용되고 세금을 미루어 줄 뿐 세 부담 자체를 줄여 주지는 않으며,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이유만으로 현금 흐름이 부족한 납세자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세부담을 지우는 것은 공평의 지나친 추구이다. 과도한 보유세 누진과세와 무거운 양도소득세가 겹치면 매물을 묶어두는 ‘동결효과(Lock-in effect)’가 생겨 시장의 자율적 수급 조절 기능을 떨어뜨리고, 이는 다시 공급 부족과 임대료 상승이라는 민생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
조세의 효율성 측면에서 볼 때, 과도한 종부세는 정책당국이 의도한 집값 안정에 뚜렷이 기여하지 못한 채, 거래를 위축시키고 자원 배분을 왜곡하는 부작용을 낳았다는 비판이 있다. 공평의 이념은 소득세나 상속세처럼 납세자의 담세력을 직접 따지는 세목에서 구현할 덕목이지, 대물세인 보유세가 앞장서 지향할 바는 아니다. 보유세는 본래의 취지대로 과세 대상물 본연의 가치에 부합하는 낮은 수준의 비례세 체계로 재편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세청 소급감정제도: 과세 편의주의와 법적 안정성의 붕괴
상속세 및 증여세(이하 상증세) 분야로 넘어가면, 과세관청의 행정 편의와 세수(稅收) 중심 사고방식이 얼마나 깊게 자리 잡고 있는지 명확히 드러난다. 그 대표적 사례가 바로 ‘국세청 소급감정제도’이다.
현행 상증세법 시행령 제49조 제1항 단서에 따르면, 과세관청은 상속ㆍ증여세의 신고기한이 지난 후에도 결정기한(신고기한부터 상속세는 9개월, 증여세는 6개월)까지 감정평가업자에게 의뢰하여 소급감정을 실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세금을 재산정하여 과세할 수 있다.
물론 과세관청에는 나름의 논리가 있다. 아파트처럼 시가가 드러나는 재산은 시가로 과세하는데, 거래 사례가 없다는 이유로 기준시가로 신고한 재산의 세금이 가벼워지는 것은 형평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공평의 관점에서는 일리가 있는 지적이다. 그러나 이 형평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문제다. 본래 상속이나 증여는 대가 없이 재산이 이전되는 무상거래로서 정확한 ‘시가’를 파악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래서 상증세법 제60조 제3항은 시가를 산정하기 어려운 경우 ‘보충적 평가방법’을 적용하도록 하고, 부동산은 제61조에서 공시가격이나 기준시가로 평가하도록 정하고 있다. 납세자가 국가가 정한 이 법정가격으로 신고했다면 법이 정한 절차를 충실히 이행한 것이다.
그런데도 과세관청이 신고ㆍ납부가 끝난 뒤 소급감정을 거쳐 “시가가 기준시가보다 높으니 세금을 더 내라”고 한다면, 납세자는 국가가 정해준 기준을 믿고 따른 대가로 추가 세금을 맞게 된다. 이는 보충적 평가방법의 존재 의의를 형해화(形骸化)시키고, 법적 안정성과 납세자의 예측가능성을 크게 해친다. 더구나 소급감정의 구체적인 대상 기준은 비공개일 뿐 아니라 그 범위가 계속 확대되고 있다. 법률이 아니라 행정규칙이나 내부기준으로 사후에 과세 범위를 넓혀 가는 방식은 조세법률주의의 취지에 정면으로 반한다.
법이 정한 기준에 맞춰 신고한 납세자를 사후에 탓해서는 안 된다. 소급감정은 공평이라는 명분을 앞세우면서, 법치주의의 기본 원칙인 법적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을 일방적으로 희생시키는 행정 우위의 발상이다. 안정적인 조세법률관계를 흔들고, 납세자와 과세관청 사이의 다툼과 그에 따른 사회적 비용까지 키운다는 점에서 효율의 관점에서 득보다 실이 크다. 형평 문제는 시가 산정방법이나 보충적 평가방법 자체를 명확하게 정비하는 입법으로 풀어야지, 사후 소급감정의 확대로 해결할 일이 아니다.
주가 누르기 방지 세제: 시장 메커니즘을 무시한 과잉 세제
세 번째 사례는 최근 입법이 진행 중인 이른바 ‘주가 누르기 방지 세제’이다. 정부는 상속ㆍ증여세 부담을 줄이려고 상장기업 최대주주 측이 자사 주가를 인위적으로 낮추는 ‘주가 누르기’를 막겠다며, 두 가지 경우에 주식을 다시 평가하는 내용의 세법개정안을 2026년 정기국회에 제출하였다(상증세법 제63조 제5항, 시행령 제52조의2 등). 조세회피를 차단해 공평 과세를 실현한다는 명분이다.
그 요건은 두 가지다. 하나는 최근 6년 6개월 중 6년의 기간 동안 주가순자산비율(PBR)이 업종별 하위권(코스피 25%, 코스닥 10%)에 머문 경우다. 다른 하나는 최근 1년 내 중복상장이나 교환사채 발행 같은 행위로서 기업가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행위가 있고, 상속ㆍ증여 시점의 주가(평가기준일 전후 각 2개월간 거래소 종가의 평균액)가 최근 6개월 내지 3년간 평균액 중 가장 큰 가액에 비해 30% 이상 하락한 경우이다. 저 PBR의 경우 ‘최근 6개월~6년 6개월간 종가의 평균액’과 ‘현행 평가방법에 따른 시가의 1.3배’ 중 더 큰 금액으로 상속ㆍ증여재산가액을 결정한다. 기존보다 과세 기준이 최소 30% 높아지는 셈이다. 단기 요건(주가 급락)에 해당하면 ‘최근 6개월~3년간 종가의 평균액’ 중 최대치를 적용한다. 정부는 대상 기업을 상장사의 7.5%, 최대 200여 개로 추산한다.
그러나 이 개정안은 자본시장의 본질과 경제적 현실을 무시한 채, 지나친 공평 추구가 낳은 또 하나의 과잉 입법이다. 주가는 기업 내부의 경영 요인뿐 아니라 산업구조의 변화, 글로벌 경기, 금리와 환율, 원자재 가격, 정치ㆍ지정학적 리스크, 시장 심리 등 수많은 변수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결정되는 결과물이다. 물론 대주주의 배당ㆍ자사주ㆍ투자 결정이 주가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개별 기업이나 대주주가 주가를 지속적으로 좌우할 수 있다는 전제는 자본시장의 메커니즘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이고, 그 영향의 정도를 가려내기는 더욱 어렵다. 특히 저 PBR 요건은 중복상장 같은 특정 행위가 없어도 낮은 PBR이 오래 이어졌다는 사실만으로 재평가대상(추정 대상)이 되게 한다. 낮은 주가는 오너의 의도적 행위의 결과일 수도 있지만, 업황과 시장 평가의 결과일 수도 있다. 의도적 행위와 시장의 평가를 가려 줄 장치 없이 시장의 평가에 따른 저평가까지 포괄하는 것은 지나치다.
정부는 평가심의위원회에서 납세자에게 반증의 기회를 준다고 한다. 하지만 조세회피 목적이 없었음을 납세자가 입증해야 하는 구조라면, 기업이 좌우할 수 없는 시장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납세자에게 묻는 징벌적 과세로 작동할 수 있다. 이는 기업의 경영권을 승계하거나 자본을 재투입해야 하는 경제주체들에게 불확실성을 더하고, 조세행정이 정당한 주식 평가의 영역을 지나치게 침범하여 시장을 왜곡할 수 있다.
일부 기업이나 경영자가 본분을 망각한 채 사회적 지탄을 받을 만한 행태를 보이는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 그러나 기업 가치 제고(밸류업)와 주주가치 극대화는 자율적인 지배구조 개선과 시장 친화적 정책으로 유도하고, 필요하면 자본시장 당국이 나설 과제이지 세법에 무리한 과세 조항을 신설해 풀 일이 아니다. 물론 상속세 회피 목적의 인위적인 주가 조작이 있다면 그것은 조세의 영역에서도 다룰 문제다. 그러나 그 경우에도 요건은 ‘회피 목적의 인위적 행위’에 정확히 맞춰져야 하며, 시장의 결과 자체를 추정의 근거로 삼아서는 안 된다. 시장의 결과를 이유로 책임을 묻는 세제는 공평이 아니라 불합리이다.
맺는 말: 균형을 되찾아야 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보유세의 누진과세, 국세청의 소급감정제도, 그리고 주가 누르기 방지 세제는 모두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바로 ‘대부분 주요국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창적인 제도’라는 점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말을 흔히 듣는다. 세계적인 한류 열풍이 이를 보여준다. K-팝, 푸드, 영화, 드라마 등 문화와 예술의 영역에서는 독창성과 한국적 색채가 곧 글로벌 경쟁력이 된다. 그곳에서는 독창성이 창의력과 다양성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세제도는 다르다. 조세제도는 오랜 시간 여러 나라가 시행착오를 거치며 다듬어 온 공통의 지혜가 축적된 영역이다. 어떤 제도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면, 그것은 다른 나라들이 그런 시도 자체를 하지 않았거나, 제도의 도입을 검토하고도 불합리하다고 판단하여 채택하지 않았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물론 우리에게는 부동산 시장과 기업 지배구조 같은 고유의 사정이 있고, 그 사정이 새로운 제도를 요구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사정이 제도의 정합성과 예측가능성을 포기해도 되는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만 독창적인 제도를 만든다면 이는 위험하다. 자본과 기업과 사람이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드는 시대에 평균적 일반인이 예측하기 어려운 독특한 세제는 투자와 경제활동을 위축시키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요컨대, K-culture는 우리의 자랑이지만, K-tax는 자랑이 아니라 위험상품이다.
공평의 이념을 버리자는 것이 아니다. 조세정책이 공평을 잃으면 국민의 신뢰를 잃는다. 그러나 효율과 합리성, 예측가능성을 잃은 공평은 오래가지 못한다. 공평은 조세제도가 추구해야 할 목표이지만, 그 목표를 달성하는 수단은 제도의 정합성과 집행 가능성, 납세자의 예측가능성이라는 틀 안에 있어야 한다.
보유세는 비례세로 환원하여 본래의 성격에 맞게 정비하고, 상속ㆍ증여세의 평가는 시가 산정 규정을 입법으로 분명히 정비하되 그전까지는 보충적 평가방법으로 신고한 납세자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바로잡아야 한다. 아울러 기업이 좌우할 수 없는 주가를 이유로 과세하려는 주가 누르기 방지 세제는 전면 재검토되어야 한다.
공평과 효율은 대립하는 가치가 아니라 함께 가야 할 두 바퀴이다. 한쪽 바퀴만 커진 수레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를 맴돌 뿐이다. 우리 조세정책이 이제 균형을 되찾아야 할 때이다.
#납세자 #부동산 #소급감정 #안정성 #비례세 #누르기 #상속세 #상증
Legal Disclaimer
해당 자료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으로 삼일피더블유씨솔루션(주)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님을 밝힙니다.
해당 자료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으로 삼일피더블유씨솔루션(주)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님을 밝힙니다.
Copyright(C) 삼일피더블유씨솔루션㈜ All right reserved.
본 사이트에 게재된 자료들은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 받는 저작물로 그 저작권은 삼일피더블유씨솔루션(주)에 있으므로 무단 복제 및 배포를 금합니다.
본 사이트에 게재된 자료들은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 받는 저작물로 그 저작권은 삼일피더블유씨솔루션(주)에 있으므로 무단 복제 및 배포를 금합니다.